한국 민주화와 한국현대불교의 개혁운동과 그 한계
윤 승용/한국종교문화연구소 소장
2012.11.21
1. 시작하며
2. 한국 민주화와 한국불교
1) 사회 민주화와 종교변동 2) 민주화 이후의 한국불교
3. 불교개혁운동과 그 전개
1) 비상종단과 불교개혁운동 2) 승가단체의 실천불교운동
3) 개혁종단의 종단개혁운동
4. 현 개혁종단의 과제들
1) 국가권력과의 새로운 관계형성 2) 불교의 사회적 역할 증대
3) 종단의 새로운 정체성 모색 4) 출가·재가의 불교공동체 형성
5. 결론을 대신해서
1. 시작하며
한국불교는 한국 최대의 종교이다. 2005년 인구센서스 통계에 의하면 불교신도는 1,070만 명에 달하고, 불교 문화재는 국가 지정 문화재의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어 한국 종교문화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현재 한국불교는 장자 종단인 ‘대한불교 조계종(이하 조계종단)’과 천태종, 태고종, 진각종을 비롯해 265개의 종단으로 이루어져 있는 데 여러 군소종단들이 난립하고 있는 형국이다.
이 중 한국불교의 자산과 문화를 계승하고 있고， 한국불교를 전체적으로 이끌어 가고 있는 종단은 조계종단이다.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이 종단은 1，700여년의 한국불교의 역사에 비하면 비교적 최근에 형성된 종단이다. 1954년 정화불사(淨化佛事)를 거쳐 1962년에 이르러서야 겨우 종단의 모습을 갖추고 출범하였다. 최근 종단 출범 50주년 맞아 종단차원 기념 사업회를 구성하고 한국불교 역사와 그 정통성 회복을 기념하기 위해 다양한 행사를 전개하고 있다.
조계종단의 종명과 종지를 보면 다음과 같다. 본종은 신라 도의국사가 창수한 가지산문에서 기원하여 고려 보조국사의 중천(重闡)을 거쳐 태고 보우국사의 제종포섭(諸宗包攝)으로서 조계종이라 공칭하여 이후 종맥이 면면부절(綿綿不絶)하며(종헌 제1조), 석가세존의 자각각타(自覺覺他), 각행원만(覺行圓滿)한 근본교리를 봉체(奉體)하여 직지인심(直指人心), 견성성불(見性成佛), 전법도생(傳法度生)함을 종지로 한다.(종헌 제2조) 또 본종의 소의경전은 금강경과 전등법어로 한다. 기타 경전의 연구와 염불 지주(持呪) 등은 제한치 아니 한다(종헌 제3조)고 하고 있다. 또한 이 종헌의 이념과 원리에 대한 해설을 보면, 종단의 성격을 아래와 같이 정리하고 있다.
1) 조계종단은 과거 법맥을 통한 정통종단이고, 2) 회통불교의 이념을 가지며, 3) 대승불교의 이념을 지향하고, 4) 정화불사 이념을 계승하며, 5) 개혁회의의 정신을 이어받아, 6) 종도 주권이념을 실현하며, 7) 사회 및 정신 선도 이념을 주창하고 있다고 하였다.
이상을 볼 때 조계종의 역사적 발자취, 그리고 정화불사와 개혁회의의 정신을 지향하는 신앙 성격을 잘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종단 출범 반세기를 맞은 현재 종단 종헌의 개혁적 이념과 사회선도의 정신이 얼마나 충실하게 실천하고 있는지 그리고 종단의 자주화와 민주화를 기치로 하여 등장한 현 개혁종단이 한국불교의 발전， 나아가 사회발전에 얼마나 공헌했는지를 냉철하게 생각해볼 때가 아닌가 한다.
최근 불교개혁운동 출발은 한국사회의 민주화운동 전개과정과 맞물려 진행되었다. 1980년대 사회개혁 성향이 강한 민중불교운동에서 출발하여 이후 1990년대 민중불교의 사회개혁보다는 불교계 내부개혁을 중심으로 하는 승가단체의 실천불교운동을 거쳐 종단 내부 개혁에 초점을 둔 종단개혁운동이 진행되어 오늘에 이른다. 사회개혁 성향에서 종단의 제도개혁 성향으로, 출가?재가가 함께 하던 개혁에서 출가중심의 개혁으로 전개되어 왔다.
이 같은 불교개혁운동의 전개는 불교개혁이 불교종단 내부 동인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 동인에서 출발했음을 잘 보여준다. 이는 불교개혁운동이 사회개혁에서 종단내부로 전이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것과 그 과정에서 여러 가지 왜곡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이미 예고하고 있다. 종교운동은 새로운 종교가 탄생하는 것이 아닌 한 종교내부에서 출발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불교개혁운동의 흐름을 살펴본다는 것은 현 개혁종단의 형성과정과 그 과제를 살펴보는 것과 다르지 않다.
구한말 이후부터 지금까지 만해 한용운을 비롯하여 많은 불교도들이 다양한 불교개혁을 외쳐왔지만 아직도 해결된 것이 별로 없다고 판단된다. 한국불교의 전통 계승과 정체성 확립, 불교신앙의 생활화와 대중화라는 과제도 해결되지 않았고, 비구중심의 권위주의적 종단 운영, 재정의 비합리적인 운영이라는 문제점들도 과거와 별로 다르지 않다. 전통을 회복한다는 명분으로 종단은 오히려 과거로 회귀하는 듯한 모습을 보일 때도 있다.
조계종단의 창립 동기가 친일불교의 청산과 전통불교의 회복이라는 정화불사의 이념에 있는 한 일부에서는 전통과 비구에 집착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평가할지 모르나, 그렇게 진단할수록 한국불교는 전통과 비구의 틀에 얽매여 낡은 사고와 운영의 틀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전통적인 신앙과 전통적인 제도들을 현대 디지털 기기로 아무리 잘 포장하더라도 개방과 연대의 현대사회 시대정신을 담아내지 못하면 현대적 대중종교로서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이 글은 한국불교가 낡은 사고와 운영의 틀에 사로잡힌 원인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을 벗어날 수 있는 대안은 없는 것인지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지고 1980년대 이후 한국불교를 둘러싸고 있었던 불교개혁운동의 성과와 한계를 살펴보기로 한다.
이 같은 개혁운동의 결과로서 등장한 현재 개혁종단이 다시 과거로 회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또 그들이 안고 있는 종교적 과제가 무엇인지 간략하게 정리해 보고자 한다. 더 구체적으로는 먼저 사회 민주화와 한국불교의 관계를 정리해 보고, 이어 불교 개혁운동의 전개과정을 살펴볼 것이며, 마지막으로 현 개혁종단이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개혁적 과제들을 점검해 보려 한다.
2. 한국 민주화와 한국불교
한국사회는 1987년 6?10민주항쟁을 정점으로 사회 민주화가 진행되었다. 이 사회 민주화는 우리사회 전반에 구조적인 변화와 더불어 의식의 변화도 함께 가져다주었다. 권위주의적인 억압과 통제를 벗어나 자율과 참여라는 시민사회의 가치가 보다 중요시되는 민주사회로 이행하게 된 것이다. 사회 각 부문의 자율성은 증대되었고, 그에 따른 사회 각 부분의 사회적 책임도 동시에 수반되는 시민사회로 나아갔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의 제도적 수준은 그에 미치지 못하여 시민의 사회적 욕구가 일상에 그대로 노출되는 등 이익충돌의 갈등시대가 연출되었다. 이에 한국의 각 종교들도 각기 입장에서 새로운 시민사회 환경에 대처하는 방안들을 모색하게 된다.
1) 사회 민주화와 종교변동
1990년 문민정부가 들어서자 한국사회의 민주화는 제도적으로 일단 마무리된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시절 기독교 진보측은 민주화운동 인사들의 피난처 역할을 하며 민주화운동의 보호자로서 사회적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었던 반면, 기독교 보수측은 반정부 종교 인사들을 고발하고 그 댓가로 정권의 도움을 받아 양적으로 과대 성장하였다. 정부의 지원을 받은 보수 측은 대형 종교행사를 통해 자신의 사회적 힘을 과시함으로써 대규모 성장을 도모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사회 민주화가 진행되고 시민사회가 활성화되자 그 동안 종교에 응집되어 있던 사회운동 인사들이 자신의 활동 공간을 찾아서 종교영역을 이탈해 갔다.
바로 사회적 약자들의 이익단체들이 이제 종교에 의지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자기 발언과 역할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는 종교의 사회적 위상 변화에 결정적 영향을 주었다. 이를 계기로 하여 민주화 이전시대에 나타났던 종교의 과잉 정치화와 사회 과대 영향력은 대폭 축소되고 한국사회에서 종교영역이 서서히 정상화되기 시작하였다.
과거 권위주의 시대에 종교계 일부에서는 사회 민주화라는 보편적 이해를 대변하고 있어서 국가와 시민, 또는 시민간의 이해갈등을 조정하는 사회적 역할을 담당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각 집단들이 자기 이해와 관련하여 직접 발언과 투쟁이 가능해지면서 종교가 나서서 사회적 약자나 공동체의 이해를 대변할 필요도 없게 되었고, 또 그러한 활동 공간이 대폭 축소되어 그 사회적 위상이 떨어지고 말았다. 종교의 활동 공간의 축소만이 아니라 민주화 시대 종교들은 자기 이해를 지키는 것에 더 정신이 없을 정도로 바쁘게 움직였다.
이는 민주화시대 종교의 공적 역할이 대폭 축소된 것임은 물론 종교의 공적 역할이 과거와 같은 사회 참여 방법으로는 한계가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을 계기로 하여 한국의 종교계는 그 동안 권위주의적 정권으로부터 받았던 다양한 예외적인 특권들도 내려놓아야 할 상황이 되었다. 이렇게 민주화 이후 종교는 사회 조정기능을 상실하고 사적 이해 당사자로 전락했으며, 종교도 자기 이해를 지키는 원색적인 종교시장에 놓이게 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말하자면 사회 민주화는 종교의 공적인 활동 공간을 축소시키고, 종교의 시장화를 재촉하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더욱이 민주화 이후 종교의 성장이 멈춘 상황을 고려한다면 각 종교 각축은 더욱 치열해 질 수밖에 없었다.
한편, 사회 민주화는 종교에 대해 국가개입을 약화시킴으로써 종교의 탈정치화와 동시에 종교에 대한 국가의 중립화를 촉진하게 만들었다. 민주화 이후 기독교 진보교단의 보수화 추세는 이러한 탈정치화 추세를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한국불교나 개신교 보수측에서는 탈정치화가 아니라 오히려 정치참여가 활성화되는 모순적인 형태를 보였다. 이는 사회 민주화라는 일반 흐름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모순된 현상이다. 민주화 시대에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종교의 탈정치화가 일부 한국종교에서는 왜 이 같은 재정치화 현상으로 나타나는가? 민주화 이후 종교가 직접 정치참여에 뛰어 들게 된 것은 민주화의 효과보다 바로 앞서 언급한 대로 종교시장의 치열한 경쟁상황의 압력이 더 컸기 때문이다. 민주화 이후 사회적 역할이 축소되고 종교의 사회적 위상이 추락하는 과정에서 자기 이해를 보호하기 위한 탈출구로서 정치참여를 선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종교의 정치활동은 다시금 종교시장을 활성화시키는 계기로 작용하였고, 나아가 종교의 재정치화를 더욱 가속화시켰다. 이때 나타난 종교의 재정치화는 이전의 민주화 운동과 같은 종교의 정치참여와는 전혀 다른 성격을 가진다. 얼핏 보기에는 사회 민주화가 국가와 종교간 양자의 거리를 더욱 좁히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민주화 이후 한국 종교의 재정치화 현상은 종교와 정치 간의 거리는 대폭 확대되었으나 종교 간의 각축이 정치를 끌어드리는 고육책으로 보인다. 과거에는 국가가 국가권력의 정당성을 보완하기 위해 종교의 지원이 필요했으나 이제는 종교가 시장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국가의 지원이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또한 사회 민주화에 따른 국가의 중립성도 종교시장을 활성화시켰다. 국가의 중립화는 국가가 종교에 대한 통제를 줄이고, 종교도 다른 영역과 같이 세속법에 의해 공평하게 대우함으로써 종교에 개입했던 과거와는 달리 종교시장의 자율 규제에 종교를 맡기려 한다. 특히 경쟁이 격심한 다종교 사회에서는 국가의 종교 중립성에 대한 요구가 종교시장의 공정성을 위해 표출될 수밖에 없다. 최근 논란이 불거진 불교의 환경-개발 논쟁이나 기독교의 세금논쟁에서 볼 수 있듯이 국가는 세속적인 법을 통해 종교들을 공정하게 관리하려고 하거나 아니면 종교시장의 자율규제에 맡기려 한다. 이런 추세가 강화될 수밖에 없는 것은 민주화된 국가는 권력의 정당성에 대한 종교의 지지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화 이후 국가와 종교 간의 접촉 접점이 이전보다 더 확대되고 있다는 것은 바로 종교시장에서의 경쟁이 그 만큼 격화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이처럼 국가의 중립화도 결국은 종교의 시장화를 재촉하는 결과를 초래해 종교의 재정치화로 이끄는 또 하나의 동인이 되었다. 이 같은 재정치화는 과거처럼 국가와 종교 양자의 대칭적 힘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이제는 시장 상황에 있는 종교가 협상과 거래를 통하여 국가의 자원배분에 참여하기 위해서 개별 종교들이 적극적으로 나서기 때문이다. 이 때 종교는 국가 개입을 스스로 자초하기도 하고, 나아가 국가를 위협하기도 한다. 이리하여 종교의 정치참여 문제가 아니라 종교권력의 문제가 한국사회에 다시 부상하게 되었고, 그에 따른 종교에 대한 비판적인 담론도 사회에 동시에 확산되었다. 이것 역시 사회 민주화의 산물이다.
요컨대 우리 사회의 민주화는 종교의 시장화를 촉진시키고, 그로 인해 일부 종교의 재정치화도 야기하고 있다. 사회 주도 종교가 없는 다종교 상황에서 종교 간의 경쟁이 심할수록 그러한 경향은 더 분명하게 나타날 것이다. 종교의 입장에서 보면, 여기에 얼마나 잘 대응할 수 있는가가 민주화시대 종교의 핵심적 과제라고 할 수 있다.
2) 민주화 이후의 한국불교
한편, 국가의 중립화는 종교에 대한 법적·정치적 규제력의 격차를 줄여서 종교의 평등화를 진행시킨다. 그 동안 특정종교가 배타적으로 누려왔던 특권들이 재검토되거나 특권이 있었다면 다른 종교에도 공평하게 개방하면서 종교 간의 차별을 재검토하려든다. 이 때문에 특정종교가 관행적으로 받아온 국가의 혜택이나 차별을 사회 정치적으로 재검토하게 되고, 또 그것을 쟁점화하려는 경향이 나타난다. 국가에 종속되어 왔다는 피해의식을 가진 불교가 이런 쟁점화를 선도하고 있으며, 제도적으로 비교적 많은 혜택을 누렸던 개신교 역시 자신의 위치를 지키기 위해 그에 맞대응하여 다른 주제들을 쟁점화하고 있다.
이런 쟁점화의 흐름이 결국 국가 중립성에 대한 종교편향의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민주화된 다종교 사회에서 이런 쟁점화는 피할 수 없는 일이다. 더욱이 권위주의 국가가 오랫동안 종교시장을 왜곡시켜왔던 상황이라면 앞으로도 여러 분야에서 정부의 종교편향 논쟁은 격화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또한 사회의 민주화는 직접 선거를 활성화시켜 종교의 재정치화를 가속시켰다. 종교가 우리 사회에서 최대의 자율조직을 가지고 있는 만큼 직선제 선거에서 그 영향력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더구나 직선제 선거는 대통령선거만이 아니라 지방선거와 교육감선거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민주화 이후 종교집단이 선거를 계기로 하여 자기 이해를 정치권에 강요하는 것이 아닌지 의심스러울 때도 있다. 그러한 경우 종교는 또 하나의 사회 권력으로 비쳐지기까지 한다. 이같이 민주화시대 선거는 경쟁이 치열한 우리사회에서는 종교의 재정치화와 종교의 사회 권력화가 역설적으로 증대되는 결과를 낳고 있다.
민주화 이후 이 같은 종교의 시장화와 재정치화 흐름을 타고 등장한 불교 세력이 바로 1990년대 현 개혁종단을 형성한 개혁불교세력이다. 이 개혁종단은 사회 민주화의 과정을 통해 형성된 것이기는 하지만 한국불교사에서는 그 이상의 역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여기에는 그 동안 국가에 종속되어 있었던 것에 대한 반발과 더불어 피해에 대한 일종의 보상심리도 작용하고 있고, 또 정화불사이후 누적된 한국불교의 과제들을 해결해 주기를 바라는 여망과 함께 민주화 이후 새로이 형성된 종교시장과 종교의 재정치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자 하는 불교계의 요구가 같이 어우러져 있기 때문이다.
민주화 이전 한국불교는 국가권력에 강하게 포섭되어 있었다. 군종제도 참여, 문화재 관람료 수입, 불탄일 공휴일 등과 같은 종교적 특혜도 이러한 정치적 종속에 대한 일종의 사회적 보상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1993년 김영삼 문민정부의 출범을 계기로 한국 불교는 자신의 존재기반과 실질적 사회 역량과는 별개로 정치적 의식과 태도가 완전히 달라졌다. 이런 기류를 타고 1994년 형성된 종단이 바로 현 개혁종단이다.
이 개혁종단은 국가와 긴장관계를 유지함으로써 정권의 종속적인 수혜보다는 오히려 저항적 이익에 더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도 단순한 정치적인 타협으로서가 아니라 제도적 기반 위에서 이해를 추구하는 방식으로 변했다. 그러나 그런 국가와의 관계가 상황의 정치력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불교 내부의 역량 축적에 의한 것인지는 지금 한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3. 불교개혁운동과 그 전개
한국불교의 개혁운동은 친일불교의 청산과 한국불교의 전통회복을 기치로 한 1954년 ‘정화불사’로부터 출발한다. 이 정화불사를 통해서 1962년 ‘대한불교 조계종’이라는 대처와 비구의 통합종단이 만들어진다. 그러나 이 통합종단은 불교내부의 역량에 의해 형성되었다기보다 5?16 군사정권의 도움으로 겨우 이루어졌다. 그 때문에 통합종단의 적법성을 둘러싸고 거의 20년간 법정투쟁이 이어졌으며, 결국 대처승들은 1970년 태고종으로 분종해 나가게 된다. 이에 한국불교의 전통을 계승한 비구승 중심의 종단으로 정착하게 된다. 이후 조계종단은 근대에 대한 전통，세간에 대한 출세간의 비구라는 중심기조가 종단의 신앙과 조직운영을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대처 비구의 싸움 이후에도 조계종단은 내부 종권투쟁이 그치지 않았다. 종단을 대표하는 종정과 종권을 장악한 총무원장, 종권을 잡고 있는 종권파와 종권에 도전하는 재야파간의 내부 권력투쟁에 골몰한 것이다. 그러다가 1980년 ‘사회정화’라는 이름으로 국보위 시절의 치욕적인 10?27법난을 만난다. 그런 가운데 80년대 초 민중불교라는 이름으로 불교계 사회 민주화운동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이 민중불교의 영향을 받아 1983년 혁신적인 불교개혁을 주장했던 비상종단이 등장한다. 이를 계기로 종단 창립의 정화불사에 이어 제2의 불교개혁운동이 시작된다.
해방이후 한국의 불교사는 친일청산만이 살 길이라는 통합종단의 정화불사, 사회 민주화 차원에서 불교까지 개혁하려는 비상종단의 사회개혁불사, 종단의 자주화와 민주화를 기치로 내세운 개혁종단의 종단개혁불사로 진행되었음을 간단하게 정리할 수 있다.
그런데, 이들 개혁불사들은 현재 전통과 비구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애써 외면하고 지엽적인 불교개혁 문제만을 가지고 고민했기 때문에 한국불교는 여전히 전통과 비구의 틀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1) 비상종단과 불교개혁운동
현재 조계종의 개혁종단은 1983년 출범한 비상종단에 그 개혁의 뿌리를 두고 있다. 불교 개혁세력이 종단에 처음 등장한 것이 바로 ‘비상종단’이다. 그 이전에는 종단 내부에 불교 개혁세력이라고 부를 만한 집단이 존재하지 않았다. 설령 존재했다 하더라도 종단 운영에 참여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당시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사회개혁과 더불어 불교개혁을 결합하여 추진하려고 하였기 때문에 종단에 개혁세력의 등장은 아주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비상종단’은 그 명칭에서 보여주듯이 비정상적인 상태에서 단기간 종단을 맡아 운영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상종단은 이후 불교개혁의 청사진을 남겼다는 의미에서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비상종단 세력들은 1980년 초부터 가시화된 민중불교운동에 상당한 영향을 받았다. 민중과 불교를 동시에 주체로 삼아 사회변혁과 불교개혁을 함께 추진하고자 했다.
그들은 당시 진보적인 사회과학이론으로 무장하고 있었던 불교 대학생들과 교류하면서 자연히 진보적인 사회의식을 가지게 되었다. 따라서 교계 중진들이 주도하는 종단운영 형태에 대해 매우 부정적으로 생각했으며, 재가불자들을 오히려 더 많이 신뢰하는 성향을 보였다. 이러한 그들의 근대적 성향은 비상종단 개혁안에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다. 젊은 개혁세력들은 정화불사 이후 누적된 종권쟁탈의 갈등과 삼보정재의 탕진을 보고 불교의 개혁이 없이는 불교의 미래가 없다는 절박감을 가지게 되었고, 이에 ‘출가?재가’가 함께 불교개혁의 꿈을 담아 그것을 실현하고자 했던 것이다.
비상종단에서 마련한 종헌종법을 보면, 실현 가능성은 차치하더라도 지금 보아도 가히 혁신적인 내용들이 많다. 정화불사 이후 누적된 불교계의 문제점들을 모두 망라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종단 외부의 시각에서 종단 내부의 문제점과 그 대처방안을 정리한 것이기 때문에 당시 기득권을 가진 승려들의 입장에서 보면, 그들의 주장은 종단운영에 대해 거의 새로운 틀을 제시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즉 종단의 입법기능(종회)과 행정기능(총무원)의 갈등, 강력한 행정력이 뒤따르지 못한 중앙집권제의 문제, 소수가 독점해온 종단권력 문제 등에 대한 그들 나름의 해법을 모색했던 것이다.
비상종단은 아주 짧은 기간 운영되었지만 한국불교에 던진 파장은 적지 않았다. 박부영은 비상종단이 남긴 영향이 10년 뒤 현 개혁 종단을 만든 개혁회의 출범의 밑거름이 되었다고 평가하며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이 개혁안은 이전의 불교개혁안에는 찾아 불 수 없었던 ‘출가?재가’ 연합체로 불교공동체를 형성하고, 즉, 재가자와 출가자의 역할을 분담하는 제도를 마련하였고, 비상종단의 개혁안과 경험은 사장되지 않고 이후 한국불교개혁의 자양분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평가하였다. 이 개혁안이 종단에서 실현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도 종단이 전통의 회복과 비구 중심이라는 정화불사의 틀에 안주해 있었기 때문이다.
일례로 비상종단은 재가교역자의 설치와 사찰체제의 개편을 시도했는데 포교를 전담하는 재가교역자의 신설은 기존 승려들의 위상을 변화시킬 가능성이 있어서 기존 승려들이 쉽게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었고， 또한 사찰체제의 개편은 뿌리 깊은 문중에 대한 혁파의 의미를 가지기 때문에 문중에 기반을 둔 기득권 승려들에게 상당한 위기의식을 불러 일으켰다.
이 같이 다수 승려들의 암묵적인 반대가 당시 성철 종정이 이 안을 거부하게 된 중요한 요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정화불사 이후 처음으로 한국불교의 문제점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불교 개혁을 종단 내부에서 실험해 보았다는 점에서 비상종단은 한국불교사에서 잊을 수 없는 사건이다.
이런 비상종단의 탄생배경은 7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한국의 민주화운동이었지만 그 직접적인 계기는 1980년 광주민중항쟁과 10?27법난이었다.
특히 10?27 법난은 젊은 민중불교도들로 하여금 불교개혁을 각성시킨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이들은 사회 민주화와 불교 개혁을 동시에 추진하려고 하였으며, 이것은 사원화 운동으로 구체화되었다. 이 운동은 ‘세간의 승가화, 승가의 세간화’를 목표로 삼았다. 이는 사찰이 가지고 있던 사회 폐쇄성과 반민중성을 타파하고 지역사회와 민중에 기여하는 사찰 위상을 정립하려고 하였다. 이들은 1983년 7월 범어사에서 개최된 연합대회에서 처음으로 한국불교의 개혁을 공개적으로 주장하여 불교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들은 1)청년 불교도(출가·재가)의 결속, 2) 불교의 혁신화, 3) 민족불교 구현, 4) 불국정토의 건설을 내세웠다. 이 때 이들이 내세운 ‘출가?재가’의 결속, 민족불교, 불국정토는 이후 한국불교의 개혁운동에 중심적인 테마로 자리 잡게 된다.
한편, 1985년 5월 출가재가를 망라한 180여명이 민중불교연합을 발족하였다. 민중불교연합은 정권의 탄압 속에서도 불교의 자주화와 군부독재 타도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쳐나갔다.
또 1986년 6월 정토구현승가회가 창립됨으로써 진보성향의 승려가 망라된 독자적인 승가단체가 출현하였다. 이후 한국 민주화가 정점에 다다를 때인 1986년 7월에 민중불교의 성문, 명진, 벽우, 진관, 현기 등 개혁승려들이 중심이 되어 ‘해인사 승려대회’를 개최한다.
여기서 그들은 정권에 유착된 불교계 문제들을 공개적으로 폭로하며 정부에 대해 강력하게 시정을 요구하였다. 불교관계 악법 철폐, 사원의 관광 유원지화 중지, 성고문사건 진상규명, 수입개방 압력거부 등을 요구하였고, 그 때까지 금기로 여겼던 10?27법난을 ‘폭거’로 규정하고, 호국불교의 개념을 정권의 비호가 아닌 국민을 위한 것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주장까지 하였다.
이 대회를 계기로 승려들이 민주화 세력으로 등장했다는 점에서 해인사 승려대회는 한국불교사에서도 한 획을 그을 수 있는 사건이다. 불교자주화를 가로 막고 있던 법적， 제도적 굴레에 대해 불교계가 자각하고 사회 민주화 없이는 진정한 불교 자주화를 성취할 수가 없다는 인식을 가지게 하였다. 그러나 일부 소장 승려들의 농성과정에서 일어난 과격한 행동, 시위의 폭력행사 등은 당시 조계종단의 기득권층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문제였다. 이를 계기로 불교 개혁운동은 정치적 성향을 탈피하고 불교 자체의 개혁과 불교적인 개혁방법에 대한 관심으로 점차 전환하게 된다, 그리고 사회개혁을 우선시한 민중불교운동과 불교개혁을 지향하는 실천불교운동으로 서서히 분리되어 갔다.
2) 승가단체의 실천불교운동
1980년대 말 민주항쟁의 성과로 출현한 한국사회의 민주화 진전과 더불어 냉전체제의 붕괴로 나타난 세계질서의 변화는 불교계 개혁세력에게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불교개혁운동이 지나치게 사회?정치적인 편향성을 보였다는 반성과 비판이 제기되면서 진보성향의 승려들은 사회개혁보다는 불교개혁을 전면에 내세우게 된다. 그리고 6?10 시민항쟁을 거쳐 우리사회의 민주화가 자리를 잡으면서 민주화운동의 성격을 가졌던 불교 개혁운동도 종교운동 또는 불교운동으로서 새롭게 자리를 잡는다. 그 대표적인 단체가 대승불교의 실천을 강조하며 1988년 3월에 창립한 ‘대승불교승가회’, 결사운동이라는 전통불교적인 개혁방법을 모색하며 1990년 11월 창립한 ‘선우도량’, 종단의 제도개혁의 주체세력으로 등장하여 1992년 10월에 창립한 ‘실천불교전국승가회’이다.
실천불교운동으로 처음 정체성을 보인 조직은 ‘대승불교승가회’였다. 이들은 ‘깨달음의 사회화’운동을 통하여 불교개혁운동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대승불교의 이상을 사회운동에 적용·발전시킨 것이다. 그들은 산중불교와 민중불교 간의 모순과 한계를 극복하고 새롭고도 창의적인 불교운동의 담지자로서 민족불교운동을 제창하였다. 이들은 그 동안 진행되어 왔던 불교 사회운동의 급진성을 완화해서 승가대중의 정서와 수준에 맞게 불교 개혁운동을 전환하였다. 이 승가단체는 깨달음과 역사를 통일된 삶으로, 그리고 깨달음을 실천운동으로 승화하였다는 면에서 1990년대 승가운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할 수 있다.
1990년 11월 설립된 ‘선우도량’은 수덕사에서 수좌 80여명이 불교개혁운동을 위해 만든 승가조직이다. 그들은 승풍 진작과 바람직한 수행자상 확립을 위한 승가결사운동을 표방하였다. 승가의 결사운동이라는 것은 한국불교의 전통적인 신앙운동방식을 이어받아 현대적인 승가운동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이는 한국불교의 전통을 재해석하고 한국불교의 중심세력인 수좌들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상당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다시 말해, 선불교의 중심세력인 수좌들이 직접 불교개혁운동에 나섰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사건이었다. 이는 정화불사의 첫 기점으로 간주되는 ‘봉암사결사’를 연상케 한다.
선우도량은 이전 불교개혁운동과는 달리 올바른 승풍 진작과 수행자상의 정립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조계종단의 출발점인 정화불사의 목표와 다르지 않으며, 그것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신앙 현장과 수련， 그리고 결사 3자를 함께 연결하여 개혁 프로그램을 마련하였다. 이 승가단체는 승단의 문제가 단순한 세대교체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다며, 한국사회에서 승가가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보다 근본적인 대안이 필요하다는 문제제기를 하였다. 그리고 현대불교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와 그것을 타개하기 위한 불교적인 대안 제시에 중점을 두었다. 이들은 매년 2회 열리는 수련결사를 통해 일정한 주제와 그에 대한 장시간의 토론과정을 가지곤 하였다. 토론 내용은 주로 한국 승단의 현실과 불교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본질적인 문제들을 포함하고 있었다. 이같이 선우도량의 활동은 정화불사의 이상을 고려해 볼 때 90년대 승가운동의 새로운 지평을 제시했다고 평가된다.
마지막으로 ‘정토구현승가회’(1986년 6월 창립, 1992년 8월 해체)를 이끌던 주역들이 불교개혁운동의 지나친 정치편향성을 비판하고 그것을 시정하고자 개편한 승가조직인 ‘실천불교전국승가회’가 있다. 이들은 수행정진, 교화방편, 정토구현을 기본강령으로 삼았다. 이들은 1994년 현 개혁종단을 만든 개혁회의의 구성에 주도적 역할을 담당한다. 이들이 내세운 종단개혁의 핵심은 법과 제도의 개혁으로 특징을 지울 수 있으며, 이는 이후 1994년 개혁회의의 개혁 기조와도 거의 일치한다. 이들의 주목할 만한 활동은 종회의원의 직선제와 겸직금지를 골자로 한 ‘종헌?종법’ 개정운동으로 지극히 한정된 범위 내에서 실현 가능한 불교 개혁을 추구한 것이 특징이라 하겠다.
3) 개혁종단의 종단개혁운동
승려들이 불교개혁운동 전면에 등장한 해인사 승려대회(1986) 이후 한국 불교계 분위기는 크게 달라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90년대 초반에 이르기까지 종단의 종권 분규는 지속되었다. 개혁운동이 진행되는 가운데서도 종단은 폭력사태와 법정공방과 같은 반불교적 모습이 그치지 않았다. 정권에 대한 반자주적인 종단체질, 종권의 전횡과 부패, 뿌리 깊은 문중?문도회의 대립의식, 일부 개혁 주체세력의 변질 등을 들 수 있으나 본질적으로는 승려의 자질과 종단 제도화와 같은 종단의 구조적인 문제였다.
여기에 1988년 불교계의 족쇄로 여겨졌던 불교재산관리법이 폐지되고 대체 법안으로서 전통사찰만 규제하고 지원하는 전통사찰보존법이 시행되자 한국 불교계 전체에 잇따라 분종, 창종 사태가 발생하였다. 이러한 분종?창종 사태는 그 동안 ‘불교재산관리법’이라는 관제적 규제와 그 행정 권력에 의해서 종단 체제가 어느 정도 유지되어 왔다는 사실을 반증하고 있는 사건들이다. 이런 전통사찰보존법의 시행은 종단 존속의 위기감을 불러왔고 또 불교내부 개혁에 대한 필요성은 더욱 더 절실해졌다.
이러한 종단의 위기감은 개혁운동세력들을 1994년 초 다시 집결시켰다. 그 직접적인 도화선은 서의현 총무원장의 3선 시도였다. 이를 계기로 ‘범승가종단개혁추진위원회’(이후 ‘범종추’)가 만들어졌고, 이 ‘범종추’는 권력과 결탁하여 진행되고 있었던 3선 시도를 막기 위해 구종법회(求宗法會)와 단식투쟁을 하게 된다. 이에 범종추와 종단 간에 충돌이 일어나 종단측의 요청으로 공권력이 투입되었다. 그러나 결국 서의현 총무원장의 사퇴로 일단락된다. 이어 불과 1달 만에 종단 개혁의 주체인 ‘개혁회의’가 발족되었다. 이렇게 일사천리로 개혁세력이 종단을 장악할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종단 내에 개혁의 열망과 역량이 축적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실천불교전국승가회가 주축이 된 개혁세력들은 개혁회의에 참여하여 종단의 제도 개혁안을 추진하게 된다.
개혁회의는 종단의 제도개혁 방향을 담은 5대 지표로 1) 정법종단의 구현 2) 불교 자주화 실현 3) 종단운영의 민주화 4) 청정교단의 구현 5) 불교의 사회역할 확대를 천명했다.
당시 개혁안의 주요 내용을 보면, 교육원?포교원의 별원화(別院化), 승가교육 체계 정립, 종단 민주화의 요체로서 겸직금지, 총무원장 및 종회의원 직선제, 비구니스님들의 종회의원 할당 수 확대, 교구종회 활성화, 사찰운영위원회 구성, 총무원과 중앙종회의 관계 정립 등이다. 이는 대체로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개혁종단의 운영 형태이기도 하다.
이러한 정책들은 종단의 민주화와 공영제 그리고 총무원장의 직선제를 통하여 종단의 안정을 꾀하자는 것이 개혁회의 의도가 반영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개혁회의는 실질적으로는 그리 큰 성과를 내지 못했다. 그나마도 중요한 성과라고 할 만한 것은 승가교육체계의 정립이었다. 그동안 승가교육은 거의 출가자와 은사의 뜻에 맡겨져 있었으나 1995년 이후 출가자는 행자의무교육 6개월과 기본 의무교육 4년을 이수해야만 정식 승려가 될 수 있도록 하는 출가자의 교육체계를 제도적으로 마련되었다. 그리고 승려가 된 이후에도 전문, 특수 교육과 재교육을 받는 시스템을 도입하여 승려교육을 체계화한 것이다.
그러나 불교개혁운동의 차원에서 보면, 개혁회의의 종단 개혁조치들은 아쉬운 점들이 너무 많다. 종단운영의 안정을 도모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다고는 하나 종단 운영의 안정성마저도 기대하기가 힘들었다. 예컨대, 1998년 송월주 총무원장의 3선 문제로 내분에 휩싸이며 다시 속세의 법에 의하여 처리되는 등 제도개혁의 한계를 또 다시 보여주었고, 또한 불교의 사회적 역할을 천명하고 있으나 대중적 생활불교를 지향하는 비젼도 명확하게 보여주지 못했다.
당시 개혁불사에 동참하였던 많은 재가불자단체들은 중앙종회 구성에 신도 대표의 참여를 요구하였으나 개혁회의는 신도의 종단 운영참여는 시기상조라며 이를 거부하고 말았다. 그 대신 ‘사찰운영위원회법’을 제정하여 각 사찰운영에 신도 참여를 인정하는 수준으로 마무리되어 버렸다. 그리고 신도법 제정을 통하여 신도의 자격과 교육의 의무화, 그리고 중앙신도회 구성 등을 제도화하는 것에 그치고 말았다. 이후 사찰운영위원회마저도 신앙현장에서는 거의 유명무실하게 되어 버리고 만다.
이 같은 개혁안이 나오게 된 것은 개혁의 주체가 비구를 중심으로 하는 승가조직이었다는 점과 이전 비상종단의 개혁 실패를 거울삼아 가능한 실천적 대안을 마련하는데 급급했던 것이 아닌가 한다. 특히, 포교를 전담하는 중간교역자의 개편과 문중혁파를 위한 사찰체제 개편을 핵심으로 삼은 과거 비상종단 개혁안의 핵심이 여기서 완전히 제외된 것을 보면, 당시의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 개혁종단은 이른바 개혁불교를 처음으로 종단에 정착시킨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현 개혁종단은 한국불교의 개혁 희망과 그 한계를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종단의 자주화과 민주화를 지향하고 있다는 면에서는 희망적이고, 반면 정화불사를 통해 출범한 비구중심의 종단을 계승하는 측면에서는 한계다. 개혁종단 이후 한국불교는 분명 이전의 불교와는 달라졌다. 이전 불교가 국가와의 관계에서 종속적이었다면 그 이후로는 자주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으며, 비구를 중심으로 운영하고 있지만 사회참여의 종교로 나아가려 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종단의 권력분산과 겸직금지로 인하여 종권투쟁이 이전보다 완화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조계종단의 내부 목소리를상기해 보면 전통의 계승과 비구중심의 현 종단체제를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불교의 대중화와 생활화를 도모하고 있다. 그리고 불교의 폭넓은 개혁 없이 사회참여의 길만 모색하려 하는 것 또한 문제가 된다. 참여 주체인 신앙대중을 소외시키고는 종교의 진정한 사회참여는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계속 전통만 찾고 비구중심의 종단으로 고착화된다면 시대의 조류를 따라잡을 수 없을 것이다. 과거의 반(反)친일전통을 강조하며 출세간적인 성격을 더욱 고착시키는 것과 다르지 않다. 승가를 중심으로 신도를 수직적으로 결합시키는 현재의 개혁종단 운영방식으로는 종단 운영의 안정은 몰라도 불교가 대중적인 생활종교로 나아가기는 정말 어렵다. 그럼에도 종단은 전통과 비구라는 정화불사의 틀을 넘어 근대와 대중이라는 새로운 미래 비전을 명확하게 하게 설정하지 못하고 아직도 자신의 정체성 모색과 종교권력의 제도화 수준에서 맴돌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4. 현 개혁종단의 과제들
현 개혁종단은 출세간의 승가가 대중적인 생활불교를 추진해야 한다는 면에서 딜레마에 빠져 있다. 출세간 중심의 승가종교와 세간 중심의 대중종교 간의 거리가 너무 멀어 보이기 때문이다. 한국불교의 정통성을 강조하면 항시 정화불사로의 복고적인 모습으로 되돌아간다. 반면에 생활불교의 대중성을 강조하면 불교의 근대화와 세간적 성격이 강화되어야 하므로 전통을 강조하는 출세간적인 승가가 이를 용인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이같이 한국불교의 정통성과 대중성을 어떻게 조합할 것인가가 한국불교의 개혁 방향을 결정할 것이다. 현재 조계종단은 전통과 근대, 세간과 출세간, 수도승과 신앙대중이라는 대립 항이 서로 뒤엉켜 불교개혁의 미래 비전을 세우기란 쉽지 않은 상황에 있다.
1) 국가권력과의 새로운 관계 형성
현재 한국불교는 국가와 새로운 관계를 모색하고자 한다. 특히 개혁종단은 종단의 자주화를 출범 명분으로 또한 자신의 존재 정당성으로 제시하고 있다. 여기에는 그 동안 한국 불교는 정치권력에 이용되어 왔다는 피해의식이 크게 작용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새로운 관계 형성의 핵심은 호국불교에 대한 재해석의 문제, 즉 역사적으로 형성된 국가불교의 성격을 어떻게 재정리해야 하는가의 문제이다.
현재 개혁종단에서는 과거 전통사회에 있었던 왕실불교나 호국불교 등의 개념을 부정적으로 규정하고 호법불교나 불국토건설의 개념으로 대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런 주장에는 종교와 국가가 융합되어 있었던 전통사회의 종교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측면이 많다. 현재의 입장에서 과거의 불교 현장을 과도하게 재해석하고자 하는 측면이 있다. 호국불교라는 용어가 정치권력에 비록 오염되어 있다 하더라도 출세간적인 불교가 사회화하는 접점을 찾아 가는 데 아주 필요한 자산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너무 무시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전통사회의 불교의 성격을 고려해서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그 토대 위에서 통일시대를 대비해 새로운 관계를 모색하는 것이 바람직할것이다.
또한 종교의 국가와의 관계가 국가권력으로부터의 무조건 자주화만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한국불교는 여전히 민족문화 수호자로서 자기 역할을 확인하고 있고, 스스로 민족불교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 같이 한국불교가 스스로 민족종교로서 자리매김하는 한, 한국불교의 자주화 모색은 국가와의 관계를 놓고 볼 때 상당히 복잡한 문제들을 낳고 있다.
전통사찰과 문화재에 대한 국가지원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종단의 자주화를 단선적으로 논하기란 정말 쉽지 않다. 재가불자의 정치의식 향상과 재정적인 부담의지가 선행되지 않는 한 종단은 손쉽게 국가의 지원을 뿌리치기도 힘들 것이다. 불교계 호국불교의 논쟁은 자칫하면 이른바 자주불교와 민족불교 간에 필요 없는 논쟁만 야기할 가능성이 많다.
한편, 오늘날 조계종단은 국가권력에 대해 자주화를 내세우면서 한층 더 강화된 정치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그 정치의식 고양은 불교공동체가 감당해 낼 수 있고 또 불교공동체의 특성에 맞아야 사회적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최근 2012년 4?11 선거를 앞두고 선거참여가 보살행이라며 종단은 공개적으로 선거참여를 독려하였다. 불자들의 낮은 주권의식을 높이기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이런 정치적인 행위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그 뿐만 아니라 2012년 대선을 겨냥해 25개 불교문화정책 제안까지 제시하고 있다.
이 같은 불자들의 정치의식 강화가 민주화 이후 종교시장에서 발생하는 종교의 재정치화만 가속시키는 것이 아닌지 새겨 볼 필요가 있다. 건전한 불교공동체를 형성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인지, 보다 불교적인 정치참여의 방법은 없는지 좀 더 차분하게 검토해보아야 할 문제이다.
2) 불교의 사회적 역할 확대
불교개혁운동에서 항시 빠지지 않고 거론되어 온 것이 불교의 사회적 역할 증대이다. 출세간성이 강한 한국불교가 부족한 세간성을 강조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한국불교의 주체인 승가는 수도공동체적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하화중생의 실천은 언제나 문제가 되어 왔다. 또한 민주화 이후 종교의 탈규제화 현상으로 인하여 종교가 더욱 시장화?세속화되고 있는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사회참여의 길을 통해서 종교가 사회 공공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중요한 일이다. 그런데 불교의 사회참여나 사회화운동은 역사적으로 보면 모두 대중 결사운동을 통해서 이루어져 왔다. 특히, 근대 이후 결사운동은 민중불교운동과 같이 아래로부터의 대중결사운동의 형식을 밟았을 때 성공 가능성이 높고 소기의 성과를 얻을 수 있다.
최근 조계종단도 종단의 쇄신을 위해 ‘자성과 쇄신을 위한 5대 결사운동’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아래로부터의 결사운동이 아니라 위로부터의 결사운동이라는 점에서 대중운동으로서의 한계를 엿볼 수 있다. 그것도 국가의 불교지원 예산과 관련한 불만에서 시작했다는 점에서 그 동기조차 의심스럽다. 결사운동은 신앙대중이 주인의식을 가지고 나서야 대중운동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인데, 현재 주인의식이 부족한 신앙대중이 자발적으로 나서기란 정말 쉽지 않을 것이다. 신앙대중에게 주인의식을 가지게 하려면 종단이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를 좀 고민해 보아야 할 것이다. 신도증만 발행한다고 해서 재가신도들이 하루아침에 주인의식을 가지게 되는 것은 아니다. 보다 근본적인 처방이 필요하다.
한편, 현대사회 문제들은 거의 대부분 인간의 욕망을 과도하게 부추기는 자본주의적 삶의 형태와 자기 이해에만 몰두하는 개인주의적인 삶의 병폐가 가져온 부산물들이다. 이에 대해 인간의 욕망을 줄이는 대안적 삶의 방식과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사는 공동체의식의 확산이 무엇보다 필요한 세상이다. 여기에 무아(無我)와 연기(緣起)를 교리로 삼는 불교가 가장 시의 적절한 대처방안이 될 수 있다. 현대 소비주의를 지양하는 대안적 삶의 방식은 불교의 핵심 가치인 욕망의 절제와 연기적 세계관을 실천하는 것과도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현대 사회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생명운동, 환경운동, 평화운동 공동체운동 등 사회운동에 불교의 참여가 부족한 원인이 무엇이겠는가. 근본적으로 재가신도의 참여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종단 지도자가 모범을 보일 수는 있지만 직접 대중적인 사회운동을 주관하고 실천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사회참여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출세간의 수행 문제가 아니라 세간과 재가의 사회생활과 연결되어 있는 문제이다. 따라서 세간 속에서 불교적인 생활을 하는 재가불자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한 이 문제가 해결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3) 종단의 새로운 정체성 모색
조계종단의 신앙 정체성은 친일불교에 대한 한국불교의 전통회복과 화두를 가지고 깨침을 얻는 간화선에 있다. 여기서 전통회복이란 종단이 역사적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한 명분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실제적인 신앙 정체성 문제는 간화선의 문제다. 조계종 종헌에서도 이미 보았듯이 한국불교의 전통은 회통불교임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정화불사 이후 간화선이 지배하고 있는 한국불교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간화선은 주관적인 절대 신념 속에서만 자기 깨침이 가능한 것이라서 현대적 사고에 잘 어울리지 않을 뿐 아니라, 또 많은 시간을 세상과 단절하여 자신의 깨침에 몰입해야 하는 수도자의 종교다. 따라서 생활이 곧 수행이고 봉사가 되어야 하는 현대사회의 생활불교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현 개혁종단 내에서도 간화선을 포함한 신앙의 정체성에 대한 논란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 논란은 두 가지 방향에서 논의되고 있다. 첫째는 한국불교조계종이라는 종명과 관련된 문제이고, 둘째는 간화선을 종지로 삼고 있는 신앙전통을 계승하는 문제이다. 간화선의 문제는 앞서 논의한 것으로 대신하고 제기된 종명의 문제만 잠간 살펴보면, 현재 조계종단은 한국불교를 계승하고 있고, 또 한국불교의 전통적 자산을 국가로부터 받아 관리하고 있다는 면에서 한국불교 전체를 대표하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조계종단은 한국불교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종명으로 재탄생시킬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현재 ‘대한불교 조계종’이라는 종명은 종파불교라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으며, 그것도 일제 강점기에 일본의 종파불교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간화선이 강조된 것도 일제 이후의 일이기 때문에 한국불교의 전통을 계승한다고 보기는 힘들며, 한국불교의 전통 계승을 전제할 때, 회통불교가 더 적합하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시각에서 한국불교의 역사와 사상을 다시 논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사실 간화선 논쟁은 한국불교의 정체성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상당히 복잡한 문제다. 한국불교의 전통신앙계승에 관련한 문제이고, 동시에 한국불교에 주도권을 잡고 있은 승려들의 종교적 권위와 관련된 문제다. 정화불사 이후 너 나 없이 청정비구와 간화선을 한국불교의 특성으로 꼽고 있는 것도 그것이 역사적 사실이라기보다 이 같이 신앙적 권위와 제도에 엉켜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한국불교에서 간화선과 비구집단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단순한 수행방법에 지나지 않는 간화선이 한국불교의 권위의 원천이 되고 제도의 기준이 되고 있다. 또 한국불교에 독점적 지위를 가지고서 종단의 비합리적인 종교권력들까지 정당화시켜 주고 있는 형편이다. 안거에 의한 법납과 그에 따른 종교적 권위와 제도 등은 이 간화선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간화선 중심의 불교는 출세간의 성격이 강해 출가자의 엘리트 불교로 전락할 가능성이 많다. 간화선은 청정비구가 아니면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 그리고 간화선을 중심으로 할 경우 전문 출가자가 종교권력을 독점하는 현상을 가져와 현대적 대중종교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의견이 많다. 설령 간화선 중심의 불교로 간다 하더라도 하화중생(下化衆生)하는 대승불교의 성격을 더 부여하든가, 아니면 간화선을 대중적인 선으로 개발해서 보급하지 않은 한 한국불교는 출가자의 불교로 한정될 수밖에 없다. 적어도 조계종단이 미래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종단으로 정착하려면 대중적 생활종교에 장애가 되는 현재 간화선의 문제를 어떤 방식으로든 해결해야할 필요가 있다.
4) 출가·재가의 불교공동체 형성
한국의 근대불교가 형성되면서부터 재가불교의 종단참여는 불교개혁의 핵심과제였다. 최근의 정화불사에서도 재가의 역할 규정은 핵심적인 테마였다. 이는 불법승(佛法僧) 삼보의 승가의 개념과 연결된 문제이기도 하다. 즉 전통적인 승가의 개념이 현대사회에서도 불교공동체로서 정말 유효한가 하는 문제이고, 그 동안 분리되어 왔던 출가와 재가가 어떤 관계를 가져야 하는가의 문제다. 조계종단의 기틀인 정화불사가 대처불교에 대해 청정비구 불교만 강조하다보니 대처승은 물론이고 재가불교의 역할과 비중까지 크게 약화된데 따른 문제이다.
현대 다른 나라 불교들은 대부분 승가의 개념을 확대시켜 민주사회에 맞게 재가중심의 불교로 탈바꿈하고 있다. 일본이나 서구에서는 이미 출가와 재가를 구분하지 않는다. 실제로는 재가불교가 불교계의 주도권을 잡고 있는 실정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불교에서 출가와 재가의 구분이 없어진 것은 대승불교가 형성된 이후부터였다. 그러나 대승불교가 형성될 당시 대승불교에 걸 맞는 승가의 개념을 산출하지 못했고, 전통불교에서와 같은 승가의 개념을 왕조국가인 중국에서 그대로 답습해 왔다는 것이 문제였다. 또 정교분리가 이루어진 근대에 들어와서도 전통 계승에만 초점을 두어 근대사회에 맞는 승가의 개념을 만들어 내지 못했다. 과거 불교경전에 근거한 전통적이고 엘리트적인 경향의 근대불교에 의존하다보니 근대사회에 맞게 재해석 과정을 거칠 여유도 없었다. 그 때문에 재가와 출가를 구분하지 않는 대승불교를 근간으로 하는 한국 불교에서도 출가중심의 전통적인 승가개념을 그대로 답습하게 된 것이다. 그것이 금과옥조가 되어 한국불교 전통으로 굳어버렸다,
현재 불교공동체는 4부 대중으로 구성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출세간의 승가를 중심으로 세간의 재가를 수직적으로 결합시키고 있는 수행공동체적 형태에 지나지 않는다. 이 같이 승가중심의 불교공동체는 수도공동체의 성격을 넘어서기 힘들고 나아가서 자연히 출세간적인 성향을 보일 수밖에 없다. 현재 한국불교의 출가승은 승가의 중심이면서 수도승의 성향이 강하여 가톨릭으로 치면 수도원의 수사 수녀들이 신앙대중의 사목(司牧)을 담당하는 사제의 역할을 동시에 하고자 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한국불교가 대중적 생활불교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출세간적인 수행공동체인 승가와 세간의 법적 지배를 받는 불교공동체인 종단을 확실하게 구분할 필요가 있다.
한편, 현대사회에서는 세속적인 권위는 물론이고 종교적인 권위도 탈권위주의적이 되고 있다. 출세간적인 승가가 삶의 모범을 보이고 세간의 재가가 종단에서 자기 책임 하에 자기 역할을 충실히 할 수 있는 수평적인 조직과 운영이 필요하다. 또한, 출가와 재가가 화합하고 역할을 분담하는 불교공동체 형성을 목표로 삼는다면, 현재의 반친일불교, 비구중심, 간화선으로 대표되는 정화불사의 한국불교를 전반적으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특히, 비구승들에게만 집중되어 있는 종단 권력을 4부 대중에게 균형 있게 배분하여 모두가 종단의 주인으로서 자기 맡은 바 소임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4부 대중에 근거한 제도개혁과 의결구조 개선이 무엇보다도 시급히 필요하다. 현재와 같은 비구승 중심의 구조 속에서 종단이 아무리 다른 노력을 한다고 한들 기대하는 성과를 얻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전통과 출세간에만 의존하는 불교는 민주화된 현대사회에서 개혁의 동력을 잃어버릴 가능성이 많다. 과거 승려들에게 물적 기반을 제공하면서 공덕을 쌓는 일에만 열중하던 재가신도들이 스스로 자기 일을 찾아 가는 방향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사실을 보고 있다면, 문제의 해결이 아무리 어렵다 하더라도 이제 외면할 수는 없는 일이 되었다. 현 개혁종단은 불교의 신앙과 사회적 실천이 서로 분리되지 않도록 하는 방안이 무엇인지를 좀 더 고민해 보아야 할 것이다.
결론을 대신해서
민주화의 물결 속에서 이루어진 불교개혁운동의 산물로 1994년 개혁종단이 출범하였다. 출범 이후 조계종단의 행정, 교육, 포교 등 전반에 걸쳐 변화를 가져왔다. 그러나 한국불교의 근본적인 문제들은 여전히 남아 있다. 한국불교의 정체성 에 대한 명분과 앞으로 지향하고자 하는 대중적 생활불교가 서로 대립하고 있기 때문이다. 1954년 정화불사 이후 비구를 중심으로 하는 승가의 위상 때문에 신앙의 정체성 명분에만 너무 집착해 온 것이 아닌가 한다. 전통회복과 비구중심의 정화불사를 모델로 하는 한국불교는 이미 한계에 봉착해 있다. 새로운 개혁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신앙현장에서는 불교의 자주성도, 대중적 생활종교도, 전통의 올곧은 회복도 달성하기 힘든 상황에 와 있다. 미래의 남북화합과 민족불교로서의 역할을 준비하는 새로운 한국불교로 가다듬어야 할 때다.
우리사회 종교에 대한 비판 담론이 크게 확산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불교는 최근 여론조사에서 다른 종교에 비해 여러 면에서 호의적인 평가를 받았다. 종교권력을 행사하지 않는 종교로, 문화전통을 보존하는 종교로, 새로운 문명사적 담론에 적합한 종교로 평가받았다. 시민들의 눈에는 불교가 시대정신에 꼭 맞는 종교사상이라는 것이다. 이 같은 시민의 긍정적인 평가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바로 불교의 발전으로 이어 지지 않는 것은 현실에서 작동하고 있는 불교공동체의 문제다. 이 현실의 불교공동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하루 빨리 한국불교의 정체성에 대한 재정립과 재가의 종단참여 문제들이 해결되어야 한다. 특히, 재가불자들이 종단의 운영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때 개혁종단이 바라는 종단의 자주화와 민주화도, 불교의 대중화와 생활화도, 종단 권력의 안정적 제도화도 가능할 것이다. 그러지 않는 한 한국불교의 이상과 현실의 괴리는 여전히 지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